혼종 혹은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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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Art 2016 (12th Dakar Biennale)
3 May – 2 June 2016 IFAN Museum of African Arts, Dakar, Senegal Noh Suntag 노순택 Anida Yoeu Ali 아니다 알리 Wang Qing Song 왕칭송 Phan Quang 판 쾅 Pradeep Thalawatta 프라딥 탈라와타 언젠가 미국인 친구가 아시아인의 조상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물었다. 당연히 아시아인의 조상은 농부다. 조금 멀리로는 유럽 열강의 침략으로 근대 도시들이 형성되기 전까지, 더 가까이로는 급속한 경제 개발과 함께 거대 도시가 탄생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대부분 땅을 경작하며 살았다. 물론 농경 사회 이전 더 머나먼 조상은 아프리카에서부터 수만 년에 걸쳐 이주해 온 유목민이었겠지만. 그런데 그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진가로서 세상 물정을 모르지 않는 그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아시아의 오늘이었을 것이다. 이념의 충돌, 복잡한 국제 관계, 자본의 세계화 등으로 인해 아시아는 더이상 유교나 불교 문화에 기반한 농경 국가의 모습을 띨 수 없게 되었다. 이국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동양은 상투적인 판타지에 불과할 뿐이다. 그 이면에는 지리적 위치와 경제적 위상에 따라 바쁘게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글로벌 시대의 국가들이 있을 뿐이다. 아시아의 작가들은 이러한 현실 세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이다. 왕칭송은 중국에서 나타나는 이 변화의 폭과 속도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는 작가다. 그는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시작하던 해에 태어났다. 문화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은 전통적인 가치와 부르주아 문화를 공격하며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했다. 학교를 폐쇄시키고 부자의 재산을 몰수 했으며 지식인의 사상을 검증했다. 위대한 혁명을 꿈꾸었지만, 핏빛 파국으로 끝이 났다. 문화는 말살되었고 개성은 없어졌다. 재산은 공유되지 않았고, 권력은 강해졌다. 다행히 제도의 뒤틀림 속에서도 경제는 발전했다. 그러나 자본이 자라나며 생겨난 체제의 불균형이 결국 1989년 천안문 광장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학생들을 불러들였다.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할 당시 공산주의의 본질을 수호하겠다며 홍위병이 발대식을 치르던 바로 그 자리였다. 천안문에서 벌어진 이 두 가지의 사건은, 서로 이질적이지만 필연적인 연관 관계를 지닌다. 자본주의화가 심화되면서 공산주의 중국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모순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왕칭송은 중국의 현실 사회와 기존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특유의 방식으로 풍자하는 작가다. 본래 예술학교에서 그림을 전공한 그는 중국식 팝아트풍으로 풍자화를 그리다 1990년대 중반 사진 매체로 옮겨왔다. 그는 마치 영화 감독처럼 거대한 규모의 세트장을 만들고 모델을 섭외해 원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맥도널드와 콜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 어떻게든 올라가야 하는 신분 상승의 열망, 시골을 떠나 대도시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거친 인생 등 그가 대형 사진 한 장 속에 담아내는 장면은 중국의 오늘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뻔하고 직설적인 상황 설정, 조잡하고 키치적인 배경은 싸구려 문화와 욕망으로 뒤엉킨 중국의 자본주의화를 꼬집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The History of Monuments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박물관이나 교과서에서 연대기 형식으로 나열된 거대한 역사는 늘 권력을 지닌 이들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역사였을 뿐이다. 그런 역사 속에는 작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한 인민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왕칭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인된 역사가 찬양하고 기려왔던 기념물의 도상을 모은 뒤, 모델들에게 그 기념물의 포즈를 재현시킨다. 그것은 평범한 이들을 역사적 인물과 동일화 시키는 퍼포먼스이기도 하고, 신화적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드러내는 탈역사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에 작가는 수레를 끄는 농부나 소비 사회의 잉여물인 잡동사니들까지를 추가해 자신만의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주관적인 역사가 공인받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이 과정을 통해 역사마저도 각색하고자 하는 주류 사회의 위선을 꼬집고, 역사의 고정불변성을 해체함으로써 절대 가치를 지키려하는 모든 체제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왕칭송이 공산주의 체제 속의 물신주의와 속물화를 비판한다면, 한국의 노순택은 분단 국가에서 안보라는 명분 아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주목한다. 1945년 한반도가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한 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진영간의 통합 노력은 중국, 구소련, 미국의 이해 관계로 인해 무산되었다. 1950년의 전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동족 간의 내전이었지만, 사실은 한반도의 단일화를 경계했던 주변 국가들을 대신해 치른 대리전이기도 했다. 당시 국제 사회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남북한의 갈라섬으로 끝을 맺었다. 그 이후로 남한과 북한은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남한보다 우월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이상국가를 꿈꾸었던 북한은 이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기형적인 독재 국가로 전락했다. 반면 남한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통해 개발 도상국의 지위마저 넘어섰지만 여전히 북한을 향한 레드 컴플렉스에 시달린다. 노순택에게 남한과 북한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 풍경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북한은 끊임없이 도발을 일으키며 존재감을 드러내려 몸부림 치고, 그럴수록 남한은 당장에라도 전쟁이 몰려올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남한 사회에서의 삶은 단 한순간도 북한이라는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안보와 체제 수호는 늘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한다. 비록 시각적 풍경은 다를지 몰라도 노순택의 눈에 비친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미워하다 서로 닮아가는 꼴이다. 분단 상황 속에서 국가는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분단을 핑계삼아 늘 지배 계급에 유리한 쪽으로 오작동 한다. Red House는 지속적으로 분단 국가의 실체를 탐색해온 노순택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 작업은 크게 세 갈래로 이뤄져 있는데, 그 첫번째는 스펙터클한 칼라 이미지로 북한 사회가 체제 선전을 위해 보여주고 싶어하는 장면을 다룬다. 이 사진의 표면적 의미는 북한의 일사분란함이다. 그러나 이 절도 있는 장면도 자세히 보면 어긋나 있게 마련이듯 작가는 이 질서 정연함의 이면을 함께 건드린다. 작업의 2장과 3장은 흑백 사진이다. 북한을 방문하는 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북한을 기록하는 장면들과 남한에서 북한이 재현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금단의 땅에 들어선다는 호기심은 관광이나 취재 혹은 공무 등의 목적으로 북한 땅을 밟는 이들에게 방문객 수보다 더 많은 카메라를 들고 오도록 유혹한다. 이 2장의 카메라는 감시, 교류, 기록, 채증 등 사진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역할까지를 상징하면서 사진과 현실의 관계라는, 미디어에 관한 질문으로까지 확장된다. 반면에 남한 땅에서 북한을 다루는 방식을 소개하는 3장은 비록 북한의 매스게임 같은 일사분란함은 없지만, 집요하고 거국적으로 북한 체제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1장의 칼라 사진과의 묘한 공통분모를 갖는다. 그것은 결국 남한과 북한의 닮음꼴, 서로 다른 체제가 어떻게 거울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Phan Quang과 스리랑카의 Pradeep Thalawatta는 아시아의 개발 도상국가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전통의 붕괴와 변화의 몸살에 주목한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대도시로 이주한 판쾅은 A Farmer’s Diary를 통해 땅을 지키기 위해 고된 노동을 견뎌야 하는 농부의 운명에 주목하는 한편, 그런 노동의 가치가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의 괴리감을 함께 다룬다. 그에게 농부란 숭고한 노동으로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이자 한편으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점차 도시화에 밀려나는 주변부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작업은 농경 사회의 붕괴와 함께 베트남이 맞이하고 있는 사회적 풍경의 변화까지도 함께 다룬다. 개발도상국 시절 한국이 저임금과 숙련된 노동자들을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왔듯이, 현재의 베트남 역시 같은 이유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식민지와 내전을 거치며 황폐해졌던 베트남은 이제 사회 전반에서 과거와 단절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은 어쩌면 단절해야 하는 과거에 속한 곳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변화 속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이들이라 해서 이들의 삶이 지닌 존엄과 가치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시아인의 뿌리가 땅이었듯이 이들이 노동하고 살아가고 있는 땅에는 베트남 현대사의 굴곡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판쾅이 농부의 운명을 기록하려는 이유에는 베트남이 걸어온 길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연출 사진을 통해 그가 재창조해낸 세계 속에서 농부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베트남의 뜨거운 현대사를 관통하면서도 변함없이 터전을 지켜낸 역사의 산주역으로 자리매김한다. Pradeep Thalawatta의 City Circle은 인도의 신흥 도시로 부상한 방갈로르(Bangalore) 에 관한 작업이다. 판쾅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변화상에 주목해 왔던 프라딥은 방갈로르를 통해 아시아의 도시화로 주제를 확장시킨다. IT 가 발달하고 국제 기구 등이 들어선 이 도시는 전통의 붕괴뿐만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도시화의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다. 그는 이방인의 중립적 시선으로 방갈로르의 다이내믹한 변화상을 기록한다. 글로벌화를 꿈꾸는 이 도시는 모든 것들이 바뀌고 있는 중이다. 로터리는 사라지고, 교통 체증은 늘어난다. 서구의 관심과 외지인의 발길이 늘어나고 그것은 곧 도시 성장의 지표가 된다. 그리고 외지인의 발길이 늘어날수록 그들과 함께 들어온 새로운 취향과 문화가 도시의 외형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물론 인도가 서구의 관심을 받은 것은 이미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콜럼버스가 찾아 헤맨 황금의 나라 인도는 지금도 많은 서구인들에게 영혼의 순례지로서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지금의 관심은 또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 기업의 관점에서 인도는 개발되기 이전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던 매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나아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가지지 못했던 또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는 보고이다. 가난하기는 하나 우수한 인력, 무엇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언어적인 장벽이 낮다는 장점은 서구 기업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는 국가가 지닌 역설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의 국제 환경에서 인도의 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누구도 이 변화로부터 도망칠 수 없기에, 이 변화가 남기는 마지막 질문은 도시의 정체성, 그리고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캄보디아의 Anida Yoeu Ali는 그 누구보다도 복잡하게 이 정체성의 문제와 씨름하는 작가다. 그녀는 불교가 국교인 캄보디아에서 태어났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크메르족 아버지와 말레이시아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빠르게 변화는 캄보디아의 변화상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대면해 보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대부분을 미국에서 살면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니 아니다는 서구 문화에 익숙한 아시아인이면서, 불교 국가에서 이슬람을 믿는 크메르 소수 민족이자 말레이시아계이다. The Buddhist Bug는 작가가 애벌레 모양으로 고안한 옷을 입고 벌이는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한다. 이 애벌레 의상은 캄보디아 불교의 상징색인 주황색을 띠지만, 입었을 때의 모양은 이슬람의 차도르와 닮아 있다. 뱀처럼 짧게 똬리를 틀거나 길게 늘어날 수 있는 이 벌레는 모든 장소에 몸의 모양을 조화시킬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곳에서 눈에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이 옷을 입은 채 미국 대학의 식당부터 캄보디아의 놀이공원이나 버려진 극장까지 다양한 공간을 누빈다. 그녀에게 결코 생겨하지 않을 이 모든 장소들은 그녀의 복장으로 인해 낯선 존재감을 발한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혹은 경계하는 시선은 그 동안 작가가 마주해 왔던 익숙한 반응들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러한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마치 새로운 생명체인 것마냥 자신의 퍼포먼스를 완수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영문도 모른 채 벌레로 변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소외와 고독을 체험했다. 벌레로 변하고 나서야 그는 가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따라서 변신을 통한 카프카의 실험은 삶을 낯설게 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한 고민을 강제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니다의 변신은 무엇을 위한 실험이었을까. 아니다의 부디스트 버그에서 우리는 다양한 문화적 혼종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내야 하는 동시대인의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사실 이제 아시아인이 어디에 닻을 내리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그것은 비단 아시아만의 특수성이라 할 수도 없다. 전지구적인 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기존의 모든 것들이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혼종을 창조하고 있다. 창조된 존재가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무엇보다 자신의 정체성일 수밖에 없다. 혼종의 탄생도 창조의 과정이라면 아시아에 탄생하는 새로운 혼종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혼종 혹은 변신 Hybrid or Metamorphosis 언젠가 미국인 친구가 아시아인의 조상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물었다. 당연히 아시아인의 조상은 농부다. 조금 멀리로는 유럽 열강의 침략으로 근대 도시들이 형성되기 전까지, 더 가까이로는 급속한 경제 개발과 함께 거대 도시가 탄생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대부분 땅을 경작하며 살았다. 물론 농경 사회 이전 더 머나먼 조상은 아프리카에서부터 수만 년에 걸쳐 이주해 온 유목민이었겠지만. 그런데 그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진가로서 세상 물정을 모르지 않는 그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아시아의 오늘이었을 것이다. 이념의 충돌, 복잡한 국제 관계, 자본의 세계화 등으로 인해 아시아는 더이상 유교나 불교 문화에 기반한 농경 국가의 모습을 띨 수 없게 되었다. 이국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동양은 상투적인 판타지에 불과할 뿐이다. 그 이면에는 지리적 위치와 경제적 위상에 따라 바쁘게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글로벌 시대의 국가들이 있을 뿐이다. 아시아의 작가들은 이러한 현실 세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이다. 왕칭송은 중국에서 나타나는 이 변화의 폭과 속도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는 작가다. 그는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시작하던 해에 태어났다. 문화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은 전통적인 가치와 부르주아 문화를 공격하며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했다. 학교를 폐쇄시키고 부자의 재산을 몰수 했으며 지식인의 사상을 검증했다. 위대한 혁명을 꿈꾸었지만, 핏빛 파국으로 끝이 났다. 문화는 말살되었고 개성은 없어졌다. 재산은 공유되지 않았고, 권력은 강해졌다. 다행히 제도의 뒤틀림 속에서도 경제는 발전했다. 그러나 자본이 자라나며 생겨난 체제의 불균형이 결국 1989년 천안문 광장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학생들을 불러들였다.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할 당시 공산주의의 본질을 수호하겠다며 홍위병이 발대식을 치르던 바로 그 자리였다. 천안문에서 벌어진 이 두 가지의 사건은, 서로 이질적이지만 필연적인 연관 관계를 지닌다. 자본주의화가 심화되면서 공산주의 중국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모순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왕칭송은 중국의 현실 사회와 기존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특유의 방식으로 풍자하는 작가다. 본래 예술학교에서 그림을 전공한 그는 중국식 팝아트풍으로 풍자화를 그리다 1990년대 중반 사진 매체로 옮겨왔다. 그는 마치 영화 감독처럼 거대한 규모의 세트장을 만들고 모델을 섭외해 원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맥도널드와 콜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 어떻게든 올라가야 하는 신분 상승의 열망, 시골을 떠나 대도시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거친 인생 등 그가 대형 사진 한 장 속에 담아내는 장면은 중국의 오늘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뻔하고 직설적인 상황 설정, 조잡하고 키치적인 배경은 싸구려 문화와 욕망으로 뒤엉킨 중국의 자본주의화를 꼬집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The History of Monuments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박물관이나 교과서에서 연대기 형식으로 나열된 거대한 역사는 늘 권력을 지닌 이들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역사였을 뿐이다. 그런 역사 속에는 작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한 인민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왕칭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인된 역사가 찬양하고 기려왔던 기념물의 도상을 모은 뒤, 모델들에게 그 기념물의 포즈를 재현시킨다. 그것은 평범한 이들을 역사적 인물과 동일화 시키는 퍼포먼스이기도 하고, 신화적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드러내는 탈역사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에 작가는 수레를 끄는 농부나 소비 사회의 잉여물인 잡동사니들까지를 추가해 자신만의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주관적인 역사가 공인받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이 과정을 통해 역사마저도 각색하고자 하는 주류 사회의 위선을 꼬집고, 역사의 고정불변성을 해체함으로써 절대 가치를 지키려하는 모든 체제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왕칭송이 공산주의 체제 속의 물신주의와 속물화를 비판한다면, 한국의 노순택은 분단 국가에서 안보라는 명분 아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주목한다. 1945년 한반도가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한 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진영간의 통합 노력은 중국, 구소련, 미국의 이해 관계로 인해 무산되었다. 1950년의 전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동족 간의 내전이었지만, 사실은 한반도의 단일화를 경계했던 주변 국가들을 대신해 치른 대리전이기도 했다. 당시 국제 사회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남북한의 갈라섬으로 끝을 맺었다. 그 이후로 남한과 북한은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남한보다 우월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이상국가를 꿈꾸었던 북한은 이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기형적인 독재 국가로 전락했다. 반면 남한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통해 개발 도상국의 지위마저 넘어섰지만 여전히 북한을 향한 레드 컴플렉스에 시달린다. 노순택에게 남한과 북한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 풍경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북한은 끊임없이 도발을 일으키며 존재감을 드러내려 몸부림 치고, 그럴수록 남한은 당장에라도 전쟁이 몰려올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남한 사회에서의 삶은 단 한순간도 북한이라는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안보와 체제 수호는 늘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한다. 비록 시각적 풍경은 다를지 몰라도 노순택의 눈에 비친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미워하다 서로 닮아가는 꼴이다. 분단 상황 속에서 국가는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분단을 핑계삼아 늘 지배 계급에 유리한 쪽으로 오작동 한다. Red House는 지속적으로 분단 국가의 실체를 탐색해온 노순택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 작업은 크게 세 갈래로 이뤄져 있는데, 그 첫번째는 스펙터클한 칼라 이미지로 북한 사회가 체제 선전을 위해 보여주고 싶어하는 장면을 다룬다. 이 사진의 표면적 의미는 북한의 일사분란함이다. 그러나 이 절도 있는 장면도 자세히 보면 어긋나 있게 마련이듯 작가는 이 질서 정연함의 이면을 함께 건드린다. 작업의 2장과 3장은 흑백 사진이다. 북한을 방문하는 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북한을 기록하는 장면들과 남한에서 북한이 재현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금단의 땅에 들어선다는 호기심은 관광이나 취재 혹은 공무 등의 목적으로 북한 땅을 밟는 이들에게 방문객 수보다 더 많은 카메라를 들고 오도록 유혹한다. 이 2장의 카메라는 감시, 교류, 기록, 채증 등 사진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역할까지를 상징하면서 사진과 현실의 관계라는, 미디어에 관한 질문으로까지 확장된다. 반면에 남한 땅에서 북한을 다루는 방식을 소개하는 3장은 비록 북한의 매스게임 같은 일사분란함은 없지만, 집요하고 거국적으로 북한 체제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1장의 칼라 사진과의 묘한 공통분모를 갖는다. 그것은 결국 남한과 북한의 닮음꼴, 서로 다른 체제가 어떻게 거울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Phan Quang과 스리랑카의 Pradeep Thalawatta는 아시아의 개발 도상국가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전통의 붕괴와 변화의 몸살에 주목한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대도시로 이주한 판쾅은 A Farmer’s Diary를 통해 땅을 지키기 위해 고된 노동을 견뎌야 하는 농부의 운명에 주목하는 한편, 그런 노동의 가치가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의 괴리감을 함께 다룬다. 그에게 농부란 숭고한 노동으로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이자 한편으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점차 도시화에 밀려나는 주변부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작업은 농경 사회의 붕괴와 함께 베트남이 맞이하고 있는 사회적 풍경의 변화까지도 함께 다룬다. 개발도상국 시절 한국이 저임금과 숙련된 노동자들을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왔듯이, 현재의 베트남 역시 같은 이유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식민지와 내전을 거치며 황폐해졌던 베트남은 이제 사회 전반에서 과거와 단절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은 어쩌면 단절해야 하는 과거에 속한 곳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변화 속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이들이라 해서 이들의 삶이 지닌 존엄과 가치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시아인의 뿌리가 땅이었듯이 이들이 노동하고 살아가고 있는 땅에는 베트남 현대사의 굴곡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판쾅이 농부의 운명을 기록하려는 이유에는 베트남이 걸어온 길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연출 사진을 통해 그가 재창조해낸 세계 속에서 농부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베트남의 뜨거운 현대사를 관통하면서도 변함없이 터전을 지켜낸 역사의 산주역으로 자리매김한다. Pradeep Thalawatta의 City Circle은 인도의 신흥 도시로 부상한 방갈로르(Bangalore) 에 관한 작업이다. 판쾅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변화상에 주목해 왔던 프라딥은 방갈로르를 통해 아시아의 도시화로 주제를 확장시킨다. IT 가 발달하고 국제 기구 등이 들어선 이 도시는 전통의 붕괴뿐만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도시화의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다. 그는 이방인의 중립적 시선으로 방갈로르의 다이내믹한 변화상을 기록한다. 글로벌화를 꿈꾸는 이 도시는 모든 것들이 바뀌고 있는 중이다. 로터리는 사라지고, 교통 체증은 늘어난다. 서구의 관심과 외지인의 발길이 늘어나고 그것은 곧 도시 성장의 지표가 된다. 그리고 외지인의 발길이 늘어날수록 그들과 함께 들어온 새로운 취향과 문화가 도시의 외형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물론 인도가 서구의 관심을 받은 것은 이미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콜럼버스가 찾아 헤맨 황금의 나라 인도는 지금도 많은 서구인들에게 영혼의 순례지로서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지금의 관심은 또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 기업의 관점에서 인도는 개발되기 이전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던 매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나아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가지지 못했던 또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는 보고이다. 가난하기는 하나 우수한 인력, 무엇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언어적인 장벽이 낮다는 장점은 서구 기업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는 국가가 지닌 역설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의 국제 환경에서 인도의 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누구도 이 변화로부터 도망칠 수 없기에, 이 변화가 남기는 마지막 질문은 도시의 정체성, 그리고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캄보디아의 Anida Yoeu Ali는 그 누구보다도 복잡하게 이 정체성의 문제와 씨름하는 작가다. 그녀는 불교가 국교인 캄보디아에서 태어났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크메르족 아버지와 말레이시아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빠르게 변화는 캄보디아의 변화상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대면해 보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대부분을 미국에서 살면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니 아니다는 서구 문화에 익숙한 아시아인이면서, 불교 국가에서 이슬람을 믿는 크메르 소수 민족이자 말레이시아계이다. The Buddhist Bug는 작가가 애벌레 모양으로 고안한 옷을 입고 벌이는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한다. 이 애벌레 의상은 캄보디아 불교의 상징색인 주황색을 띠지만, 입었을 때의 모양은 이슬람의 차도르와 닮아 있다. 뱀처럼 짧게 똬리를 틀거나 길게 늘어날 수 있는 이 벌레는 모든 장소에 몸의 모양을 조화시킬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곳에서 눈에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이 옷을 입은 채 미국 대학의 식당부터 캄보디아의 놀이공원이나 버려진 극장까지 다양한 공간을 누빈다. 그녀에게 결코 생겨하지 않을 이 모든 장소들은 그녀의 복장으로 인해 낯선 존재감을 발한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혹은 경계하는 시선은 그 동안 작가가 마주해 왔던 익숙한 반응들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러한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마치 새로운 생명체인 것마냥 자신의 퍼포먼스를 완수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영문도 모른 채 벌레로 변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소외와 고독을 체험했다. 벌레로 변하고 나서야 그는 가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따라서 변신을 통한 카프카의 실험은 삶을 낯설게 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한 고민을 강제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니다의 변신은 무엇을 위한 실험이었을까. 아니다의 부디스트 버그에서 우리는 다양한 문화적 혼종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내야 하는 동시대인의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사실 이제 아시아인이 어디에 닻을 내리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그것은 비단 아시아만의 특수성이라 할 수도 없다. 전지구적인 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기존의 모든 것들이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혼종을 창조하고 있다. 창조된 존재가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무엇보다 자신의 정체성일 수밖에 없다. 혼종의 탄생도 창조의 과정이라면 아시아에 탄생하는 새로운 혼종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Hybrid or Metamorph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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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American friend of mine once asked me who were the ancestors of Asians. The answer is of course, the farmers. Most Asians have made a living from farming, until the megalopolis emerged from rapid economic developments, or if you go back a bit further in history until modern cities were formed after they were invaded by powerful European nations. Naturally, their ancestors before the agricultural age would be nomads who migrated over thousands of years from Africa. Yet what was his intention when he asked me the question? As a knowledgeable photographer, what he truly wished to know was probably Asia’s today. Collision of ideology, complicated international affairs and globalization of capital have prevented Asia from being agricultural nations based on Confucianism or Buddhism any more. The Orient as a home to the exotic and innocent people is merely a stereotyped fantasy. On the inside, they are simply countries living this global era busily seeking their survival strategy per their geological position and economic status. Asian artists can never be free from such reality.
Wang Qingsong is an artist who sensitively detects the range and speed of such change occurring in China. He was born in the year when China started the Cultural Revolution. Mao Zedong who initiated Cultural Revolution had attacked traditional values and bourgeois cultures that lead to a mass purge. He shut down schools, confiscated assets of the rich and enforced verification of ideology. It was a grand revolution he had intended, but it ended in bloody ruins. Culture was wiped out and individualities were vanished. Properties were not distributed and power was fortified. Fortunately despite the distortion of the system, economy continued to advance. Yet the ill balanced system that surfaced as the capital grew in the end summoned the citizens and students to Tiananmen Square in 1989 in cry of democracy. It was where the Red Army held its inauguration ceremony making their vows to protect the essence of Communism in 1966 just as the Cultural Revolution was starting. The two events that took place in Tiananmen are heterogeneous but are inevitably related to each other. They symbolically reveal the ironies that Communist China must face as its capitalism evolves. Wang is an artist who in his own unique way makes a satire out of the points where real life of China collides with the old values. As a student of fine arts, he started from caricatures drawn in Chinese pop-arts style and moved onto photography in the mid-1990s. Like a film director, he creates giant sets and hires models to stage a scene as he directs. Admiration for capitalism symbolized by McDonald’s and Coca Cola, the fierce desire to climb up the social ladder, the exhausting life of laborers who are forced to leave the country side and settle in the big cities; each scene he captures in the giant photograph reveals the raw side of China’s today. His predictable and straight-forward settings, as well as the crude and kitch backgrounds are like a black comedy that ridicules China’s capitalization drenched in cheap culture and cravings. The History of Monuments further more asks the question: what is history after all? The extensive history listed in a chronological order in museums and text books has always been a history created by the powerful, a history for them only. In such history, chances are low for the artist himself, or the people in his work to make an appearance. Wang Qingsong collects images of monuments that are celebrated by the official history in both west and east alike, and asks the models to reenact the pose of these monuments. It’s a performance for the common people to identify with the historical figures, and a process of making post-history to expose the unbearable lightness of mythical beings. He adds a farmer towing a cart, or miscellaneous objects that are remainders of consumer society in an attempt to make his own historical analysis. Of course the artist does not expect his subjective history to be recognized. Yet by doing so, he criticizes the main stream society’s hypocrisy that alters history, and he tries to rattle all systems that are in favor of keeping the ultimate value by dismantling the unchangeable history. While Wang Qingsong criticizes fetishism and philistinism of the Communist system, Korea’s Noh Suntag focuses on how ideology functions in this divided country that’s under the justified name of security. When the Korean Peninsula became independent from Imperial Japan in 1945, the effort to unify the country by the socialist and liberalist camps was abolished due to the interest of China, former Soviet Union and the United States. The war in 1950 appeared to be a battle between brethren, but in fact it was a surrogate war fought for the neighboring nations fearing a unified Korea. At the time, international society did not wish to see the Peninsula come together, and ultimately in ended two separate Korea’s. Since then South and North Korea have walked quite different paths. Until the 1960s, North Korea dreamt of building an ideal nation using its economic power that was more outstanding than its South counterpart. Today, it has degraded into a deformed authoritarian country, isolated from the world. Meanwhile South Korea went through a rapid economic development and is no longer a developing country. Even so it still suffers from the ‘red complex’ for North Korea. To Noh Suntag, the sociopolitical environment witnessed in South and North Koreas are not irrelevant. The North continues to provoke and struggles to make its presence known, and as North does so the South makes a commotion as if the war is about to start any time. Not one moment in the life living in South Korea is free from the subject of North Korea. Security and protection of the system override all other values. Although the visual sceneries may differ, but in the eyes of Noh the North and the South hate each other so much to the point they have started to resemble one another. It may look like the country is struggling to function properly in the midst of division but in the end, the divided condition always malfunctions in favor of the ruling class. Red House is a major project by Noh Suntag, a photographer who had consistently explored the truth in this divided country. The work is divided largely into three chapters. The first consists of spectacular color images portraying scenes that North Korea wishes to expose in order to promote its political system. On the surface the photographs indicate North Korea’s impeccable order. But as flaw can be found in all perfectness, the artist touches on the other side of this organized scene. The second and third chapters are in black and white. They are composed of scenes where visitors to North Korea document the country with cameras, and how North Korea is recreated in South Korea. The curiosity of stepping into the forbidden land that no one knows when they can return to, lures those who enter North Korea for the purpose of tourism, news coverage or public affairs, to bring in more cameras than the number of visitors. The cameras in chapter 2 symbolize different roles played by photography including surveillance, exchange, documentation and collection of evidence, and expand into the question of media that link photography to reality. On the other hand, chapter three that shows the way how North Korea is introduced in South Korea, oddly shares similarities with the color images from chapter one. Although chapter two lacks the orderly mass games of North Korea, it too criticizes the North Korean system in a persistent and general fashion. They are a fable on how the two different systems of South and North mimic each other like a mirror. Phan Quang from Vietnam and Sri Lanka’s Pradeep Thalawatta concentrate on the breakdown and change of tradition that most developing countries in Asia are bound to experience. Phan Quang who was born from a typical rural town and moved onto a big city focuses on the fate of a farmer who must endure hard labor to protect his land in A Farmer’s Diary. He also touches on the alienation of reality where the value of such labor receives no attention. To him, farmers are honest people making a living from noble labor and at the same time they are people in the peripheries who are pushed away by urbanization with their values unrecognized. At the same time, the project also talks about the change in social environment Vietnam is going through as its agricultural society collapses away. Just like Korea that had achieved fast economic growth with cheap but skilled labor as a developing nation, today's Vietnam is coveted by many global enterprises for the same reason. The country that was once devastated by the colonial and civil war days is now cutting off its ties from the past across the entire society. Under the circumstances, the rural areas perhaps belong to the past that needs to be severed. However, just because they are being isolated and pushed away amidst the social changes, it does not mean the dignity and value of their life should be instantly erased away As Asians are rooted in mother earth, the land they work and live on completely harbors the contours of Vietnam's contemporary history. Phan Quang most likely documents the farmer's fate so that the memory of the path Vietnam has walked is not lost. In the world he recreates using documentary and staged photography, farmers are not a subject of pity that are about to go extinct but are recognized as the living heroes who have survived Vietnam's intense contemporary history and secured their homes. In City Circle, Pradeep Thalawatta portrays India's newly emerging city of Bangalore. Much like Phan Quang, Pradeep had noticed how the city he lives in is changing and through Bangalore he expands the theme to urbanization of Asia. A city with advanced IT technologies that houses international organizations, Bangalore is a figurative location where the deteriorating tradition can be witnessed along with various stages of urbanization. From a neutral view of an alien, he documents the city's dynamic changes. Everything is going through transformation in this city that dreams of globalization. Rotaries are vanished and traffic is worsening. Interest from the West and influx of foreigners are on the rise and that fact itself becomes an index for urban development. As more people from the outside come into the city, come the new taste and culture that even change the exterior of the city. Of course it has been several hundred years since the West began to show their interest in India. The land of gold that Columbus so desperately searched for, still remains to be the place for soul searching to many westerners, a place of admiration. Yet current interest has another context. From an enterprise point of view, India is a gem that still hasn't lost the charms other Asian countries used to have before they were developed, with more benefits others did not have. Although the country is not rich, it has excellent human resources and the fact that it has low language barrier compared to other Asian countries is a fascinating feature for western companies. Ironically enough, India is a country where the highest number of languages is in use. Therefore under the current international circumstances, India inevitably has to change. No one can escape from this change and the last question it leaves us with has to be connected to the city's identity, and the identity of those in the city. Anida Yoeu Ali from Cambodia battles with this identity issue more fiercely than anyone. Although she was born in the Buddhist nation of Cambodia, she was raised by Thai-Cambodian mother and a father who is part Malaysian and part Cham. Cham is one of the Muslim ethnic minorities in Cambodia. Until she returned home to face her identity in the fast changing Cambodia, she had lived and was educated mostly in the United States. Therefore Anida is an Asian who is familiar with the western culture, a Cham minority who believes in Islam in a Buddhist country. The Buddhist Bug is based on the performance staged by the artist wearing her caterpillar costume. This costume is colored in orange that symbolizes Cambodian Buddhism, but when she puts it on it resembles the Muslim chador. This insect that can coil up like a snake or stretch out its body can adjust its shape to all places. On the other hand its shape can't help but protrude no matter where it is. Wearing the costume artist maneuvers through various places ranging from a cafeteria in an American university, a playground in Cambodia, to an abandoned theater. These places that the artist are already familiar with are given a bizarre presence because of her attire. People's eyes full of curiosity or alert are the usual responses the artist had received previously. Regardless, she completes her performance as if she is a new form of life. Gregor in Kafka's The Metamorphosis turns into an insect not knowing why and experiences alienation and solitude that are fundamental to humans. Only after his 'metamorphosis' does he realize what role he had played in his family and what his life had meant. Therefore Kafka's experimentation of metamorphosis enforces thoughts on human identity and values by alienating the life. If so, what did the experiment of Anida's metamorphosis intend? In Anida's Buddhist Bug we are faced with the reality of our contemporaries where an identity must be discovered from the chaos of various cultures. In fact it is unclear just where the Asians are rooted in these days. This is not limited to Asia either. Following the global movement of the capital, everything from before are cut off from the past and are creating a new chaos. The first thing this newly created being must face is no other than self identity. If the beginning of a new chaos is part of the process for creation, the new chaos must pursue its identity in every way it can to testify its reason and value of existe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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